선교사 : 故 마 문구 목사, 유 제영 선교사
선교지 : 탄자니아
파송배경과 파송시기
1980년대 초에 아세아연합신학대학이 제3세계 젊은이들을 불러 신학공부를 시키기 시작을 했습니다.
한국교회와 연결하여 한국교회를 배우게 하며 한국교회가 장학금으로 지원하여 수학한 후에 자국으로 돌아가 현지인으로 자국을 복음화 하게하는 프로그램 입니다..
1981년 탄자니아의 중,고등학교에서 수학교사로 교직하던 매뜌 비아문구 (마 문구, MathewByamungu ) 청년이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서 먼저 초청한 케냐학생이 오지 않게 되자 케냐학생대신에 오게 되면서 임마누엘교회와 연결이 되었습니다. ( 그 당시에는 강남제일교회 )
1984년 6월에 김 국도 목사님과 임마누엘교회를 통해 마 문구 청년이 4년간의 장학지원과 용돈까지 그리고 신앙생활의 훈련과 함께 신학공부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일하던 유 제영전도사와 결혼을 하고자 하였을 때에 처음에 집안의 반대가 심하였지만 부모님들의 허락이 있게 되어 8월에 수요일예배를 드린후에 김 국도 목사님의 사랑의 배려와 도움과 주례로 마 문구신학생과 유 제영 전 도사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 선교실 총무) 결혼하고 10월에 탄자니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파송당시 상황
1984년 파송당시의 탄자니아는 북한과 친밀한 사회주의 국가였습니다.
탄자니아와 대한민국이 외교관계가 없는 이유로 출입국을 금지한 나라중에 하나가 대한민국 이었기에 결혼비자를 가지고 유제영 선교사가 탄자니아에 입국하고자 하였으나 거절을 당하여 탄자니아 다레스살람 공항에서 3일간 붙잡혀 있었습니다.
마 목사가 탄자니아 외무부에 찾아가니 한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에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의 남편이 마침 이민국의 최고 담당자이었기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고 탄자니아 선교를 위한 첫 걸음을 내 딛을 수 있게 주 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파송당시의 탄자니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정책의 실패로(?)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살 수있는 물건들이 시장이나 가게에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라에서 모든 식품,물건들을 소유하고동네마다 10가구를 하나의 단위로 묶어 관리하는 10호 반장제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살고있는 집의 호수가 있어 저희 집에 해당하는 번호가 불려져야지만 나라에서나온 쌀, 콩, 설탕, 밀가루, 성냥, 모기향코일…등등 (이런것들도 잘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살 수가 있었습니다.
이 때에 돈이 없다면 다음기회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또한 그때 마침 우리에게 돈이 넉넉하게 있다고 해도 1 가구와 식구대로 나온 분량이상을 더 살 수도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잘 적응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 때는 잘 적응을 하지를 못해 어려웠었다고 기억이 됩니다.
탄자니아감리교 시작
탄자니아 선교사로 파송을 받은후 먼저는 한국으로 오기전에 신앙생활을 하던 루터교회가 아세아연합신학대학에서 수학한 학력을 인정하여 주어서 루터교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2 교회를 맡아 4년간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김 국도 목사님과 임마누엘감리교회의 이 땅에서 받은 사랑과 은혜를 기억할 때 탄자니아에 없는 탄자니아감리교회를 시작해야 겠다는 강한 감동이 있어져 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으나 어떻게 감리교회를 탄자니아에서 시작해야 할지는 몰랐습니다.
이후에 유 제영선교사가 둘째 딸아이를 출산한 직후에 자주 걸린 말라리아로 인해 치아의 발치들과 건강이 악화되어 한국으로 일시 귀국하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권고로 장기요양이라는 소견이 나오게 되자 김 국도 목사님의 조언으로 마 문구 선교사가 감리교 협성신학대학원에서 공부를하게 되었습니다.
1991년 2월에 협성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3월에 김 국도 목사님의 애끓는 애쓰심으로 인해 대한기독교감리교회에서 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남 연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게 되었습니다.
( 이 표현을 쓰는 것은 감리교회에선 처음 있는 일인고로 외국인에게 목사안수를 주자는데 누가 선듯 김 국도목사님과 비젼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저희들이 옆에서 볼 때에 김 국도 목사님께서
입안에 침이 마르도록 애쓰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
탄자니아로 귀국하여 1991년 6월에 탄자니아 정부에 탄자니아감리교회를 등록하고 저희가 세를 들어 살던 집의 거실에서 저희 4식구와 함께한 친구들 몇몇과 1991년 6월 25일 탄자니아감리교회를 시작하여 첫 예배를 드리게 되었 습니다.
선교 현황
탄자니아 감리교회는 2017년 6월 현재 10개의 지방회, 6개의 연회, 1개의 총회로 되어 있습니다. 81개의 교회가 개척, 설립되었으며, 성도는 5,324 명 입니다.
전도사 72명, 목사 35명, 감독 5명, 감독회장 1명 이며 선교사 4가정 입니다. 유치원 16 개처, 건축중인 초등학교 1 개처, 신학대학 1 개처, 진료소 3 개처, 기술학교 1 개처 녹음실 1개처 입니다.
기술학교 시작배경
저희가 주로 섬기고 있는 ‘음사사니’ 교회는 ‘컴패션’ 기관과 협력하여 252명의 가난한 어린이들을 3년째 섬기고 있습니다. 이제 점차로 어린이들이 자라나 초등학교 7년 졸업후 국가가 실시하는 중학교진급시험에서 실패하게 되어지는 일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컴패션에서 섬기는 직원들의 신실함으로 발품들을 팔아 남아지는 여러 품목들의 경비를 모아 본부의 허락을 받아 이런 학생들을 위한 기술학교들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금년 4월에는 음사사니 교회의 공간부족으로 인해 ‘보코’교회에서 영어 반, 컴퓨터 반 ( 컴퓨터 25대 ), 봉재 반 ( 일반 재봉틀 15대, 공업용 재봉틀 6대, 스웨터 짜는 기계 1대 )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탄자니아 정부가 인정한 기술학교의 허가를 받았으며 음사사니 교회에서는 6월 중에 미용반을 개원하였으나 아직 몇 군데를 더 손을 보고 있습니다.
추진하고싶은 조리반
음사사니 교회 바로 한 모퉁이의 헌 집이 있습니다. 십 년전부터 저희 교회가 25,000$에 사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헌 집을 사서 부수고 이곳에 조리반을 만들고 싶습니다. 중,고등학교에 여러 가지 형편과 이유들로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 뿐만이 아니라 일정한 직업이 없는 교회안의 많은 청년들이 이 조리반을 통하여서도 직업 들을 얻게 되 었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그럼으로 이 일을 위하여 교회안의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방학과 방과후의 시간들을 이용하여 탄자니아 전통 춤, 전통 찬양, 성가합창, 팝 스타일의 춤, 난타…등등을 가르치고 훈련하고 연습하여 금년 중에 콘서트를 하여 이 일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원 필요한 기도제목
1) 아직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가난합니다. 수고하는 가난한 목회자들 가정의 영양과 생활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 1가정당 숫염소 1마리, 암염소 1마리씩 지원하여 잘 증식하여 조금이라도 격려가 되어졌으면 합니다.
숫 염소 1마리, 암 염소 1마리 - 2마리 X 37 $ = 74 $ X 80 교회 = 5,920 $
2) 8월 (24일) 25일 – 8월 27일(28일)에 제 2회 탄자니아감리교 여선교대회가 음사사니교회에서 작년에 이어 있을 예정 입니다. 참석예상 인원은 200여명 입니다. 외지에서는 여러 방법으로 모아서 각자의 왕복차비를 부담하지만 200여명의 식사비용과 참석자 모두에게 유니폼으로 참석 여선교회원 모두가 하나라는 일체감과 감리교여선교회원 이라는 자부심을 주고 싶어 티셔츠를 나누고 싶습니다.
티셔츠 ( 로고 프린트 포함 ) 200장 X 4.6 $ = 920 $
식사 – 조식 200명 X 4번 X 1 $ = 800 $
중식 200명 X 4번 X 1.5 $ = 1,200 $
석식 700명 X 1,5 $ = 1,050 $ 합계 3,970 $
3) 12월 25일 - 26일, 다레스살람 청소년,청년 성탄집회 및 세례식이 해마다 있어 성탄때에 더 감사하고 이들간의 친밀감과 교제와 쎄미나등으로 감리교의 다음세대를 향한 고취를 취하여 오고 있습니다.
해마다의 참석인원은 250명을 예상하고 있어 이들을 위한 지원으로 그 어느 때보다 좀더 질을 높인 이 집회가 되어 청소년, 청년들이 1년간 기다리게 되는 집회가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티셔츠 ( 로고 프린트 포함 ) 250장 X 4.6 $ = 1,150 $
식사 – 조식 250명 X1 $ = 250 $
중식 250명 X 1.5 $ = 375 $
석식 250명 X 2번 X 1.5 = 750 $
교통편 버스 2대대여 X 왕복 X 50 $ = 200 $ 합계 2,725 $
4) 음사사니’ 교회가 2월 7일, 봉헌예배을 위한 건축헌금으로는 4층의 다락방을 마무리하지 못했습니다.
봉헌예배 이후로도 이곳에 전기, 화장실, 천정, 바닥공사를 위해 저희들의 힘을 다했습니다.
또한 저희가 지금 세를 들어 살고 있는 집이 8월에 계약이 끝납니다. 원하기로는 7월까지 마무리를 끝내고 교회 4층으로 이사와 살기를 원합니다. ( 7, 8 평 크기 )
남은 공사 – 붙박이 옷장 2군데 x 650 $ = 1,300 $
부엌 – 싱크대 등등 700 $
페인트 칠 – 짚섬파우더 3포 x 7 $ = 21 $
수성페인트 2통 x 14.7 $ = 29.4 $
바인더 1통 x 39 $ = 39 $
실크 페인트 1통 x 62 $ = 62 $
붓, 신나 등등 = 20 $
인건비 =91 $
창문 1 – 137 $ ( 인건비, 재료 포함 ) 합계 2,399.4 $
5) 또한 1층의 부엌과 식당을 마무리하여 성도들도, 96명의 유치원생들도, 토요학교의 어린이들 252명도 식당바닥에 앉지 않고 식탁과 의자들을 사용하여 식사나 그외의 모임들의 필요에 따라 사용하게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지 생각 해 봅니다. 8월중에 4층 다락방으로 저희가 이사와 교회에 살게 된다면 4층의 공간부족으로 저희들이 사용하던 냉장고등은 교회 부엌에서 사용하게 될 것 입니다.
부엌 ; Base Cabinet ( hard wood ) 7.6m x 130$ = 988$
Top ( marble, granite ) 9.6m x 58$ = 556.8$
Wall Cabinet ( hard wood ) 4.2m x 97$ = 407.4$
Sink Bowl ( stainless ) 1pc x 145$ = 145$ 합계 2,097.2 $
식탁 ; 예전에 교회서 보내주신 장 의자들중 아직 쓸만한 나무들은 해체해서 보관중 입니다. 지금은 플라스틱 1인용 의자들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들로 6인용 식탁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식탁 ( 6인용, 제작,운반비 포함 ) 15조 x 43 $ = 645 $
의자 90개 x 18 $ = 1,620 $ 합계 2,265 $
6) 기술학교의 직업을 위한 미용반을 지난 6월중에 개원했으나 아직 부족한 부분들을 금년안에더 보강하였으면 합니다.
예를 들어 아직 이곳은 소개가 되지 않았으나 전망이 아주 좋은 반영구미용시술로 천연재료를 사용한 눈썹, 입술, 머리 앞부분 등에 문신을 하는 기술이 한국이 앞서가고 있는 것을 볼 때에 탄자니아 청년이 한국에 가서 배워 가지고 오게 되었으면 합니다.
잘 배워 돌아와 교회안의 직업훈련 미용반에서 상급학교로 진학도 못하고 일정한 직업이 없는 청소년들과 청년들을 잘 가르쳐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 저희 임마누엘교회가 비행기표, 숙식, 학원비 등의 지원이 1번만 있어지면 좋겠습니다.
감사한 일들
탄자니아의 동부해안으로는 회교도들의 분포가 많습니다. 다레스살람 역시도 회교도들과 회교도 사원들이 많습니다.
‘음사사니’ 교회가 탄자니아감리교회의 본부역활도 하는 것을 볼 때에 지난 13년간 건축을 해오다가, 어느 사원과 교회들 못지않게 마침내 지난 2월 8일에 3층의 건물을 봉헌할 수 있게 기도와 헌금으로 함께하여 주신 일은 몇 번을 말하 여도 모자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제 외관으로 멋지게 보여지는 건물에 못지않게 내용으로도 다음세대가 더 아름다운 감리교회가 되어지기를 기도하며 ‘ Better Church for the Next Generation ‘ 이란 표어를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안의 자녀들이 탄자니아, 교회 그리고 각 가정들의 더 아름다운 일군들로 세워져 나가길 찬양하며, 모이며, 공부하며, 회교도들의 라마단 금식기간중에 매년 어린이들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날자보다 일찍이, 이들보 다 더 늦게, 40일 작정 금식기도로 나라와 교회와 가정과 이웃과 자신들의 학업등등..을 위해 기도하게들 되었고 이때마다 놀라 운 기도의 응답들을 보게하시니 감사할 뿐 입니다.
탄자니아 감리교회를 설립할 그 당시부터 지금까지 함께하는 청소년들이 자라났습니다. 이제 이들이 전도사로 목사로 세워져 자기 몫을 각자의 교회에서 감당하는 것을 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감사합니다. 아멘 “ 이렇게 식사기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것이 엊그제 같기만 합니다.
목사안수를 받을 때에 펑펑 눈물을 쏟아내던 것을 보며 우리 역시도 그들이 어떤 길을 어떻게 지나 감리교회의 목사들로 안수를 받게 되었는지 알기에 함께 눈시울이 뜨거워 지기도 했습니다.
이제 이들이 곳곳에서 목회하며, 교회의 성도들 앞에서 설교도, 바다에 들어가 세례를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김 국도목사님과 임마누엘교회로부터 받은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를, 탄자니아에서 탄자니아 영혼들을 위해 예수님의 사랑 과 은혜를 나눌 수 있어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제 6월 마지막 주일이면 탄자니아감리교회가 26살이 됩니다.
33년전, 김포공항에서 빙 둘러 손잡고 김 국도 목사님과 사모님께서 눈물의 기도와 이사야 43: 2절의 말씀을 주시며 저희를 탄자니아로 보내주시던 일이 생각 납니다.
지팡이 하나 대신에 검정 이민가방 하나를 들고 압복강이 아닌 인도양을 건너 탄자니아로 왔습니다.
26년전에 10명도 채 안되게 작은 거실에서 탄자니아 감리교회의 설립이자 첫 탄자니아 감리교회 개척예배를 드렸는데 오천명이 넘는 성도들로 오늘 이르게 하신 주님을 찬양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김 국도 목사님과 임마누엘교회의 만남의 아름다운 축복을 주사 탄자니아 한 청년이 신학생이 되고 목사와 선교사가 되고 감독이 되고 이제는 탄자니아 감리교회의 초대 감독회장으로 세워지기 까지… 자동차사고, 강도로 한 눈을 적출하게 되었을 때에 받은 사랑..등등 놀라운 감당할 수 없는 은혜를 돌아 볼 때에 감사의 눈물로 주님의 발 밑에 두손들고 엎드려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참으로 부족한 저희들로 하나님께서 임마누엘교회와 성도님들의 눈물의 기도와 사랑과 헌금으로, 여러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탄자니아 곳곳에 교회를 세우게 하시고 영혼들이 구원되게 하시고 자라나게 하시니 그 은혜와 그 사랑이 참으로 아름다울 뿐 입니다.
감사를 드립니다.